2022-03-27

소년 / 윤동주

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.

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

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.

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.

두 손으로 따듯한 볼을 씻어 보면

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.

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.

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, 맑은 강물이 흐르고,

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--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.

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.

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--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.